안녕하세요. 오늘은 책을 읽다가 떠오른 한 문장으로부터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.
돈은 저장된 자유 시간 같다.
쉬다가 일하니 더 선명하게 느껴졌습니다. 우리가 돈을 버는 건 사실 시간을 물질화하는 일이고, 저축은 그 시간을 자유의 형태로 저장해 두는 일 아닐까요. 이 관점을 기준으로 다시 질문해 봅니다.
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를 추구하는 것이 단지 욕심 때문일까?
#돈은-욕심인가-자유인가
돈을 욕망의 상징으로만 보면 질문의 답은 간단해집니다. 하지만 돈을 자유의 저장으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.
- 언제 쉬고, 언제 일할지 결정할 수 있는 선택권
- 실패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여유
- 타인의 기대나 구조에 덜 휘둘리는 독립성
이건 단순히 “더 많이 갖고 싶은 욕심”과는 결이 다릅니다. 부를 추구하는 행위가, 사실은 삶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한 본능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.
그리고 한 가지 덧붙이고 싶습니다. ‘자유’는 공기처럼 당연해 보이지만, 실은 아주 비싼 자원입니다. 하루를 온전히 내 마음대로 쓰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고, 그 난이도는 경제적 자유와 맞닿아 있습니다. 돈이 자유의 저장이라면, 부를 추구하는 행위는 자유라는 자원을 축적하는 일입니다.
#부를-추구하는-이유는-하나가-아니다
부를 추구하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릅니다. 누군가는 소비를 위해, 누군가는 안정감을 위해, 누군가는 미래의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부를 쌓습니다.
저는 여기에 하나를 더 얹고 싶습니다. 시간에 대한 결정권.
돈이 충분하면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할 수 있고,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거절할 수 있습니다. 이것은 단순히 “부자처럼 보이고 싶다”는 감정과는 다른 종류의 동기입니다.
또한 부는 ‘내가 무엇을 하지 않을지’를 정하는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. 일을 줄이거나, 잠시 멈추거나, 혹은 더 깊이 공부하는 결정을 내릴 때 필요한 것은 결국 시간인데, 그 시간은 돈이 있어야 확보됩니다. 결국 부는 삶의 속도를 선택하는 힘이기도 합니다.
#자유의-저장과-욕심의-차이
욕심은 끝이 없습니다. 더 많이 갖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팔고, 결국 자유를 잃는 역설이 생깁니다. 반대로 자유를 위한 부의 추구에는 어느 순간 기준이 생깁니다.
“이만큼이면 충분하다.”
그 기준이 생기는 순간, 돈은 욕심이 아니라 삶의 설계 도구가 됩니다. 돈의 크기가 아니라 돈이 만드는 선택의 폭이 핵심이 되는 순간이죠.
하지만 이 기준을 세우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. 사회는 늘 “더 많이”를 요구하고, 비교는 끝이 없습니다. 그래서 부를 욕심으로 보느냐, 자유로 보느냐는 결국 내가 어떤 기준으로 삶을 재고 있는지에 달려 있습니다.
#결론-부는-질문이고-답은-삶의-방식이다
자본주의에서 부를 추구하는 것이 단지 욕심 때문이냐는 질문에, 저는 이렇게 답하고 싶습니다.
부는 욕심일 수도 있지만, 동시에 자유를 저장하는 방식일 수도 있다.
중요한 건 왜 벌고, 무엇을 위해 저장하는가입니다. 돈을 시간의 물질화로 본다면, 우리는 돈을 버는 동시에 삶을 설계하고 있는 셈입니다.
욕심이냐 자유냐는 돈의 크기가 아니라, 그 돈이 만들어주는 삶의 방향으로 결정됩니다.